2010년 2월 28일 일요일

[Today's Book] 윤광준의 생활명품

가방이 낡아 새로 사기로 했다. 막상 원하는 것을 찾으려면 난감해진다. 온갖물건이 넘치건만 정잘 쓸만한 것은 적다. 선택의 경우가 많은 만큼 판별의 혼란도 커지게 마련이다. 마음에 드는 물건은 턱없이 비싸다. 합리적인 선택이란 언제나 욕망의 절충을 의미한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심리를 머리 위에서 궤뚫어보는 능력이 있다. 기대치와 품질이 일치하는 경우 그 물건은 히트 상품이 된다. 모순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여전히 새로운 브랜드들이 나오고 있다. 소비자는 생산자의 동물적 후각을 영원히 따라잡지 못한다.


팀 래더맨은 자신의 간단한 아이디어를 제품화하기까지 7년을 소비했다. 각 기능의 배치와 수납공간의 확보, 강도높은 재질을 선택하기 위해 들인 노력은 집념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그 결과만을 보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면엔 한 인간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독한 연구과정이 담겨 있다. 무엇인가 만들어내는 일은 고통을 먹고 자라는 생존의 매커니즘과 하등 다를게 없다.


불필요한 장식과 허세는 필요없다. 극한의 기능을 추구하면 곧 아름다움이 된다.



여행 경력이 쌓일수록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한다. 현지에서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비 혹은 비상대책을 갖추는 능력이라 할까. 세상사 모든 일은 양을 채워야 세련된 방법을 찾게 된다. 한두번과 백번 천번의 경험은 질적 차이가 있다.

가져간 용품에 의존하지 않고 적당히 불편을 즐기는 여행이 더 재미있다. 불편이 두려우면 여행을 할 자격이 없다. 집보다 편한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압축과 통합으로 최소한의 필요 용품을 쓰기 좋게 분류해 담는 요령이 짐싸기의 핵심이다.


만든이는 팔기 위한 물건을 만들지 않았다. 자신이 경험한 불편을 해소했을 뿐이다.


꼼꼼한 인간의 촘촘한 대처는 모두의 혜택으로 돌아간다.


기능의 통합과 극대화. 말로는 누구나 떠들어 댄다. 이를 완성하는 능력은 디테일을 메워가는 창의적 인간들뿐이다.



따뜻한 차 한잔에 얼마나 큰 행복이 담길 수 있는지 알려준 것도 미로 였다. 누군가 약간의 수고를 자처하면 모두의 즐거움은 몇배나 커지는 법이다.

미로 주전자는 얘, 쟤로 인격을 부여해 부를만큼 좋아했던 물건이다. 떠나야 새삼 확인되는 사랑의 농도는 사람의 일만은 아닌 모양이다.


어설픈 무소유의 흉내는 바로 불편으로 이어진다. 에어컨 없는 공간은 후덥지근했고, 인기척 있어도 불켜지지 않는 깜깜한 복도는 짜증났다. 사소한 불편을 참는 일은 뼛속까지 스미는 치통의 아픔보다 결코 덜하지 않았다. 거부할 수 없다면 끌어안고 즐겨야 한다. 즐기지 못하면 결국 사들여야 한다. ㅎ현대를 살아가기 위한 궁색한 변명의 대안은 멀기만 하다.


같은 돈 주고 허접한 물건을 사서쓰는 행동은 무딘 감각을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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