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먹는 것 보다 그림 그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Felix가 내게 [주식회사 크레파스] 직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검정색크레파스. 가장 많이 사용 되었다. 다른 색들을 위해 밑그림을 그리는 관리자이기도 하고 여차하면 혼자서도 그림 한 장을 완성할 수 있는 뛰어난 실무자이기도 하다 완벽한 존재다 파란색크레파스. 꼭 필요하기도 하고 많이 쓰이는 색이지만 비슷한 수준의 남색도 있고, 하늘색도 있다. 이 파랑색은 자신이 대단한줄 알고 있지만 그 정도 하는 크레파스는 어디든 있다는 생각을 못한다. 노랑색크레파스 파란색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하나 차이가 있다면 Unique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크레파스통 어디에도 비슷한 색깔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완벽하진 않지만 검정색 만큼 많이 쓰였다. 하얀색크레파스 있으나 없으나 표가 안나는 색이다. 거의 한번도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도화지 색깔이 검정색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검정도화지에서의 하얀 색연필은 보통 도화지에서의 검정색연필 만큼 완벽하다. 모든 회사는 다 크레파스통이다. 검정색 크레파스 한자루 노란색 크레파스 한자루 자신이 검정색이라고 착각하는 파란색과 자신이 하얀색이라고 착각하는 파란색과 자신이 노란색이라고 착각하는 파란색과. 아무튼 흔하디 흔한 파란색. 그림은 늘 두자루가 그린다 검정색이 되거라 검정색이 힘들면 노란색이 되도록 노력하라. 파란색은 네 자신을 알아라 하얀색은 당장 도화지를 바꿔라. 단. 파란색이면서 검정색으로 착각하지 마라. 너 없이도 잘 돌아간다 또. 파란색이면서 하얀색으로 착각하진 마라. 도화지는 잘못 없다. 니 탓이다. 검정이거나 노랑하라. 완벽하거나 유일해라. |
2007년 3월 15일 목요일
주식회사 크레파스 이야기
2007년 3월 9일 금요일
2007년 3월 7일 수요일
합리성
그 책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회사는 직원이 회사에 존경심을 보이기 전에 똑똑한 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와우, 아주 좋은 말이고 언제 어디에서나 모든 조직에서 통용되는 말입니다. 하지만 어설프게 똑똑한 체하는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것이죠. 위에서 존경심이라는 말은 ‘충성심’이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고 그게 더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또한 직장상사에 대한 내용으로 대치하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직장상사는 직원이 직장상사에게 충성심을 보이기 전에 똑똑한 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직장상사는 “부하직원의 똑똑함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회사는 직원이 회사에 존경심을 보이기 전에 똑똑한 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와우, 아주 좋은 말이고 언제 어디에서나 모든 조직에서 통용되는 말입니다. 하지만 어설프게 똑똑한 체하는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것이죠. 위에서 존경심이라는 말은 ‘충성심’이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고 그게 더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또한 직장상사에 대한 내용으로 대치하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직장상사는 직원이 직장상사에게 충성심을 보이기 전에 똑똑한 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직장상사는 “부하직원의 똑똑함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써머타임
1784년 벤자민 프랭클린은 파리에서 미국 대사로 근무를 했다. 당시 상인들과 시민들에게는 저녁시간에 불을 밝히는 양초 값으로 너무 많은 돈을 지출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고 한다. 특히 여름철보다는 겨울이 문제였다. 겨울에도 대부분의 가게들이 초저녁까지 문을 열고 장사를 했다. 때문에 양초의 값으로 상인들과 시민들은 너무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문제를 공무원들은 해결해야 했다.
공무원들은 먼저 양초의 유통을 투명하게 해서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중간 상인들의 매점매석을 철저하게 단속해야 했다. 그것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양초를 만드는 기술을 향상시켜서 더욱 더 싼값의 양초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기존의 것보다 더 밝고 더 오래 가는 효율이 높은 양초를 개발해야 했다. 또는 양초를 대신할 수 있는 값이 저렴한 새로운 대체재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했다.
당시 파리의 공무원들에게는 서민들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이 양초의 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었다. 미국 대사 프랭클린은 다른 공무원들과 다른 방법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고 문제를 독창적이고 획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문제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제안을 하게 된다.
“1년에 두 번 온 나라가 시계를 다시 맞추면 가게의 영업시간을 해가 떠 있는 시간에 맞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가게 주인도 양초를 훨씬 적게 쓸 수 있고 시민들도 양초 값을 아낄 수 있지 않을까?”
공무원들은 먼저 양초의 유통을 투명하게 해서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중간 상인들의 매점매석을 철저하게 단속해야 했다. 그것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양초를 만드는 기술을 향상시켜서 더욱 더 싼값의 양초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기존의 것보다 더 밝고 더 오래 가는 효율이 높은 양초를 개발해야 했다. 또는 양초를 대신할 수 있는 값이 저렴한 새로운 대체재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했다.
당시 파리의 공무원들에게는 서민들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이 양초의 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었다. 미국 대사 프랭클린은 다른 공무원들과 다른 방법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고 문제를 독창적이고 획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문제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제안을 하게 된다.
“1년에 두 번 온 나라가 시계를 다시 맞추면 가게의 영업시간을 해가 떠 있는 시간에 맞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가게 주인도 양초를 훨씬 적게 쓸 수 있고 시민들도 양초 값을 아낄 수 있지 않을까?”
만병통치 모두다 의사
내 친구 한 명은 군대에서 의무병이었다. 의사는 아니었는데, 일정 교육을 받고 군대의 의무반에서 근무했다. 그 친구는 다치거나 아픈 병사가 오면 치료를 해주고 약을 줬다. 그런데, 그 친구의 표현대로 그는 만병통치의 검정 알약을 갖고 있었다. 약간 과장된 그의 말은 이렇다. 머리가 아픈 병사가 오면 그는 검정 알약을 2알 준다. 배가 아픈 다른 병사가 오면 그는 아까 전의 그 검정 알약을 3알 준다.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병사에게 그는 검정 알약을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준다.
“어디 아파? 그럼 검정 알약 먹어. 너는 나랑 친하니까, 4알 줄게”
만화와도 같은 이런 일이 실제로 많이 벌어진다. 그것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서 말이다. 배가 아프면 왜 배가 아픈지 원인을 알아야 처방이 가능하고, 어깨가 아프면 왜 어깨가 아픈지를 알아야 처방이 가능하다. 그냥 배가 아픈 사람에게 “배 아파? 그럼 소화제 3알 먹어” 또는 “어깨 아파? 그럼 파스 붙여”라고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우스운 처방이다. 만약 이런 의사가 있다면 사람들은 “나라도 의사 하겠다”라고 말할 거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보자. 가령, 강남의 아파트 값이 너무 올라서 문제다. 어떻게 하면 아파트 값이 올라가지 못하게 할까?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에는 <왜 why>라는 질문을 던져서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왜 강남의 아파트 값이 올라갈까?> 이 질문에 대한 현실적인 답을 찾았다면 그것이 원인인 거다. 그렇게 원인을 분석하며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원인을 분석하지 않고 단지 <세금을 많이 물린다>는 처방을 내놓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처방이다. 세금이 너무 적어서 아파트 값이 올라갔나?
<왜 why>라는 질문은 연속적으로 던져야 한다. 그렇게 몇 번 <왜 why>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생각하면 진짜 핵심이 되는 원인에 도달할 수 있다. 가령, <왜 강남 아파트 값이 올라갈까?>라는 질문에 <공급보다는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는 원인이 파악 되었다면, 그 원인에 심층적인 원인을 또 파악해야 한다. <왜 강남 아파트는 수요가 많을까?>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가령,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는 것에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고, 그럼 아파트 더 지어줘. 판교도 개발하고 송파도 개발하고”라고 대응하는 것은 “어깨 아파? 그럼 파스 붙여”와 똑 같은 대응인 거다.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파악해서 근본적인 처방을 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는 해결된다.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대부분 <왜 why>라는 질문을 통해서 해결된다. 왜라는 질문 없이 문제에 대한 처방을 내거나, 왜라는 질문 없이 만들어진 해결책은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접근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단기적인 효과로 끝나거나 올바른 해결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문제는 자신이 바라는 상태와 현재 상태의 차이(gap)를 의미한다. 그래서 문제는 크게 2가지 종류가 있다. 첫번째는 원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문제라고 생각하는 어떤 원인이 존재해서 현재 상태의 불만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목표가 존재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현재 상태에 어떤 불만이 없지만, 자신이 바라는 어떤 목표가 있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어디 아파? 그럼 검정 알약 먹어. 너는 나랑 친하니까, 4알 줄게”
만화와도 같은 이런 일이 실제로 많이 벌어진다. 그것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서 말이다. 배가 아프면 왜 배가 아픈지 원인을 알아야 처방이 가능하고, 어깨가 아프면 왜 어깨가 아픈지를 알아야 처방이 가능하다. 그냥 배가 아픈 사람에게 “배 아파? 그럼 소화제 3알 먹어” 또는 “어깨 아파? 그럼 파스 붙여”라고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우스운 처방이다. 만약 이런 의사가 있다면 사람들은 “나라도 의사 하겠다”라고 말할 거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보자. 가령, 강남의 아파트 값이 너무 올라서 문제다. 어떻게 하면 아파트 값이 올라가지 못하게 할까?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에는 <왜 why>라는 질문을 던져서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왜 강남의 아파트 값이 올라갈까?> 이 질문에 대한 현실적인 답을 찾았다면 그것이 원인인 거다. 그렇게 원인을 분석하며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원인을 분석하지 않고 단지 <세금을 많이 물린다>는 처방을 내놓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처방이다. 세금이 너무 적어서 아파트 값이 올라갔나?
<왜 why>라는 질문은 연속적으로 던져야 한다. 그렇게 몇 번 <왜 why>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생각하면 진짜 핵심이 되는 원인에 도달할 수 있다. 가령, <왜 강남 아파트 값이 올라갈까?>라는 질문에 <공급보다는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는 원인이 파악 되었다면, 그 원인에 심층적인 원인을 또 파악해야 한다. <왜 강남 아파트는 수요가 많을까?>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가령,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는 것에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고, 그럼 아파트 더 지어줘. 판교도 개발하고 송파도 개발하고”라고 대응하는 것은 “어깨 아파? 그럼 파스 붙여”와 똑 같은 대응인 거다.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파악해서 근본적인 처방을 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는 해결된다.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대부분 <왜 why>라는 질문을 통해서 해결된다. 왜라는 질문 없이 문제에 대한 처방을 내거나, 왜라는 질문 없이 만들어진 해결책은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접근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단기적인 효과로 끝나거나 올바른 해결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문제는 자신이 바라는 상태와 현재 상태의 차이(gap)를 의미한다. 그래서 문제는 크게 2가지 종류가 있다. 첫번째는 원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문제라고 생각하는 어떤 원인이 존재해서 현재 상태의 불만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목표가 존재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현재 상태에 어떤 불만이 없지만, 자신이 바라는 어떤 목표가 있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사랑이란 사소한 오해
사실, 사랑이란 사소한 오해다. 많은 사랑이 아주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된다. 유치하게 이야기를 만들어보면 이렇다.
어떤 남자가 동쪽을 보고 있었는데, 그 쪽에 있던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자기 옆에 있던 쇼핑 백이 그 남자의 소지품이라 생각하고 남자에게 건넨다. 쇼핑 백 속에는 초콜릿이 들어있고 우연히 그 날은 2월 14일이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아무런 호감이 없었는데, 상대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 예의상 몇 번 만난다. 그리고, 각자 나를 찾아온다.
남자는 나에게 상담을 한다. 자기는 여자가 그렇게 좋지는 않은데, 여자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 여자가 아주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여자를 계속 만나야 하냐고 묻는다.
여자도 나에게 상담을 요구한다. 자기는 남자가 좋지는 않은데, 그 남자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일단은 좀 더 그 남자를 만나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런 상담이 귀찮은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둘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잘해봐>
다른 사람의 지지를 받은 남자와 여자는 자주 만나면서 둘의 관계는 급진전한다. 이렇게 사랑은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되는 거다.
어떤 남자가 동쪽을 보고 있었는데, 그 쪽에 있던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자기 옆에 있던 쇼핑 백이 그 남자의 소지품이라 생각하고 남자에게 건넨다. 쇼핑 백 속에는 초콜릿이 들어있고 우연히 그 날은 2월 14일이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아무런 호감이 없었는데, 상대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 예의상 몇 번 만난다. 그리고, 각자 나를 찾아온다.
남자는 나에게 상담을 한다. 자기는 여자가 그렇게 좋지는 않은데, 여자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 여자가 아주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여자를 계속 만나야 하냐고 묻는다.
여자도 나에게 상담을 요구한다. 자기는 남자가 좋지는 않은데, 그 남자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일단은 좀 더 그 남자를 만나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런 상담이 귀찮은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둘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잘해봐>
다른 사람의 지지를 받은 남자와 여자는 자주 만나면서 둘의 관계는 급진전한다. 이렇게 사랑은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되는 거다.
감정의 틀
인간이 느끼는 감정도 두뇌의 작용이고 생각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사람은 누구도 감정을 배제하고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감정은 합리적인 생각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합리적인 생각을 조종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하는 많은 합리적인 생각도 나의 감정에 의해 조종된 것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자주 경험하듯이 미운 녀석이 하는 말은 대부분 틀린 말이 많고 억지가 많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녀석이 하는 말은 남들이 궤변이라고 하더라도 그 뜻을 충분이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도 감정의 지배 없이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더 합리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아예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생각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오히려 내 감정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나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감정의 틀을 인정하고 그것을 어느 정도 객관화 시켜야 한다. 그래야 감정의 틀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생각의 틀을 바꿀 수 있게 되는 거다.
옛날 그리스인들은 사람은 심장으로 생각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실제로 사람을 많이 해부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생각하는 것이고, 인간의 신체기관 중 가장 중요한 곳은 심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심장을 가장 중요한 신체기관을 본 이유는 전쟁터에서 심장을 찔리는 병사들이 바로 죽는 것을 보면서부터라고 한다. 아무튼 그는 심장이 가장 중요한 인간의 신체기관이라고 봤다. 그래서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인간은 가장 중요한 곳으로 가장 중요한 일을 한다. 따라서, 인간은 심장으로 생각한다.
그의 믿음은 갈렌이란 의사가 새로운 의학책을 쓰기 전까지 매우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생각은 머리로 하는 것이란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아주 우습고 바보 같은 말이지만 어떻게 보면 아직도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리지 않는 거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의 말을 약간 다른 의미에서 귀담아 들어보자. “많은 사람들은 심장으로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에 지배당하면서 말이다.”
우리가 자주 경험하듯이 미운 녀석이 하는 말은 대부분 틀린 말이 많고 억지가 많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녀석이 하는 말은 남들이 궤변이라고 하더라도 그 뜻을 충분이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도 감정의 지배 없이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더 합리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아예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생각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오히려 내 감정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나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감정의 틀을 인정하고 그것을 어느 정도 객관화 시켜야 한다. 그래야 감정의 틀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생각의 틀을 바꿀 수 있게 되는 거다.
옛날 그리스인들은 사람은 심장으로 생각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실제로 사람을 많이 해부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생각하는 것이고, 인간의 신체기관 중 가장 중요한 곳은 심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심장을 가장 중요한 신체기관을 본 이유는 전쟁터에서 심장을 찔리는 병사들이 바로 죽는 것을 보면서부터라고 한다. 아무튼 그는 심장이 가장 중요한 인간의 신체기관이라고 봤다. 그래서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인간은 가장 중요한 곳으로 가장 중요한 일을 한다. 따라서, 인간은 심장으로 생각한다.
그의 믿음은 갈렌이란 의사가 새로운 의학책을 쓰기 전까지 매우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생각은 머리로 하는 것이란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아주 우습고 바보 같은 말이지만 어떻게 보면 아직도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리지 않는 거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의 말을 약간 다른 의미에서 귀담아 들어보자. “많은 사람들은 심장으로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에 지배당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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